스쳐지나가는 가을 그때 그 단상


지난 몇 달 간 참 두려웠다.
갑자기 찾아오는 공백. 케이블 방송국 인턴을 가지 않겠다고 말하고 나니 내 방학이 텅텅 비어있었다.
그 인턴을 가지 않겠다고 전화함과 동시에 나는 PD준비를 그만두었고 말 그대로 공백의 방학을 보냈다.

만약 이번 상반기에 취직을 하고 싶었다면 공백의 시간들을 좀 더 부지런히 보내야 했지만
갑자기 찾아온 그 2달이라는 시간이 나는 참 견디기 어려웠다.

앞으로 뭘 해야 할지 모르겠고,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두려움.
이런 내 처지의 막막함과 가슴 먹먹함이 내내 맴돌았던 2013년 7월과 8월.
나는 사람들에게 내가 왜 PD준비를 그만뒀는지, 앞으로 무엇을 할 것인지에 대해 설명하고,
이야기하는 것에 어려움을 느꼈고 그럴 때마다 말을 더듬고 힘들어하는 나를 발견했다.

올해 여름, 나는 덥고 어두운 방 안에서 자주 눈물 젖은 베개를 베고 잠들었다.





내가 무슨 일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르는 채로 엉겁결에 떠밀려 시작된 2013년 상반기 취업준비는
꾸역꾸역 쏟아내던 자소서와 수많은 서류탈락과 함께 어느새 마무리 되어가고 있다.
며칠 전 한국타이어까지 마지막 탈락으로 선배가 내 자소서를 읽더니 말했다.

"이건 니 글이 아니야, 다양한 경험하고 스펙 괜찮은 24살 여자애 자소서네"
그 말을 듣고 나는 말없이 고개만 주억거렸다. 소위 잘 썼다는 자소서들을 읽고 그 틀에 맞춘, 역량 어필하는 자소서.
분명히 나의 이야기지만 그 속에는 내가 없는 그런 자기소개서. 무의미한 자소서들의 ctrl+C+V 연속이었던 것 같다.
내가 쓰고 싶은 글과 기업에서 원하는 글의 타협점을 찾고 싶었지만 그 어느것도 충족시키지 못했다.








좋은 기회를 얻어 보게되었던 한 기업의 최종면접에서 죽을 쑤고 나왔다. 
건물을 걸어나오며 알 수 없는 설움과 처량함에 마음이 답답했다.

마른 입술 침 묻혀 가며 마음 졸이고 기다리던 시간들과
어떻게 하면 나를 더 잘 보여줄 수 있을지 고민하며 잠 못들던 시간들.
돌이켜보면 훨씬 잘 대답할 수 있을 것 같은 질문들이 자꾸만 떠오르고
아쉬움에 삼성역부터 합정역까지 내내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며 지하철을 타고 돌아왔다.

그리고 상수역까지 걷다가 문득 꽃집에서 파는 바질이 눈에 들어왔다. 
코아마트까지 걸어갔다가 자꾸 그 바질이 생각나서 다시 합정 근처로 돌아가 화분을 하나 안고 왔다.
아침부터 쌓아올린 무거운 머리며 화장을 다 내려놓고 나니 그래도 조금은 마음이 홀가분하다.








좋은 경험이었고 기회였으리라. 나는 또 인생의 새로운 관문을 거쳐가고 있고,
내년에 다시 이 시기를 준비하게 된다면 오늘이 중요한 밑거름으로 작용할 것이라 믿어야겠다.
내년 취직할 때까지 바질에는 이름을 지어 물과 애정도 듬뿍 주고 곱게 가꾸어 종종 파스타에 넣어 먹기도 해야겠다.

이 면접을 마지막으로 그래도 2013년 취업준비에는 마침표를 어느정도 찍게 될 것 같다.
매일 스스로에게 그다지 관대하지 않았지만 오늘만큼은 7월부터 지금까지 마음 고생 많았다고 위로해도 될 것 같다.
정신없이 즐기면서 몸을 움직이고 싶다. 클럽이든 공연에든 가서 다 내려놓고 껑충껑충 뛰어놀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역시나 짝꿍이 다이나믹듀오 콘서트 표를 봉황새 마냥 물어다 주었다. 다듀라니... 말만 들어도 몸이 움찔움찔한다. 


가을이 나를 스쳐지나간다. 단풍이 든지도 모르는 채 그렇게 가을은 스쳐지나가고 있다.
그래도 문득 고개를 들어 발견한 가을, 인턴 생활 중 가장 큰 기쁨인 서촌의 정취는 사무실 안에서도 곱디 곱다.

콘서트도 최종면접 결과도 가벼운 마음으로 기다려야겠다. 




덧글

  • 2013/11/18 22:59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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