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같은 파리, 파리 같은 그림 먼 북소리

파리의 풍경들이 한 폭의 그림처럼 느껴졌던 이유는, 수많은 프랑스 화가들이 그려낸 파리를 먼저 봐서였을까. 내리는 비에 촉촉히 젖은 거리도, 구름 가득하던 하늘도, 가끔씩 고개를 쏙 내밀던 햇볕도 참 좋았더랬다. 그 어떤 풍경도 눈에 익었다. 그림 속에서, 영화 속에서, 글 속에서 어디에선가 본듯한 풍경들.



마레 지구에서는 고운 물건들로 가득한 인테리어, 빈티지 샵들에 발길이 닿았고 자켓에 스카프를 둘러맨 멋진 오빠들에 고개가 절로 돌아갔다. 여기저기 구경하다 소리없이 쏟아지던 비를 맞으며 빅토르 위고가 적힌 공원 어드메를 서성이기도 했다. 촉촉히 젖은 거리도, 쏟아지던 비도 운치 있고 예뻤다.

샹젤리제 거리에서는 아베크롬비 오빠들 보며 넋을 잃고 바라보기도 했고 라뒤레의 마카롱에 신세계를 맛보기도 했다. 꾸역꾸역 올라간 개선문 위에서 파리 시내를 내려다 보며 호연지기...












몽마르뜨 언덕에는 수많은 화가들로 가득하였는데, 한 화가가 인형 같은 소녀를 곱게 그리고 있어서 지나가던 많은 이들의 시선을 붙잡았다. 그 시절의 순수함과 고운 미소가 그림 한 폭에 고스란히 담겨 있어 좋았다. 그 흔한 맥도날드도 없다는 포츠하임의 촌뜨기는 스타벅스 해피아워를 찾아갔다. 반값에 프라푸치노를 먹으며 부러움 섞인 카톡들에 답장도 하고 페이스북도 종종 확인했다.


저녁즈음에는 재연이 집으로 돌아와 와인과 바게트와 치즈를 먹으며 백만년만에 한국드라마를 보기도 하고, 조금은 부끄럽지만 순수하디 순수한 지난날 이야기들로 재잘재잘 떠들기도 했다. 해질 무렵에는 근처 공원으로 가 산책하며 노을도 보고 늦은 오후 파리 사람들의 일상도 슬며시 엿보았다.


이야기 꽃을 피우다 잠들고 일어나면 평균 10시. 통유리에 가까운 재연이집 창 밖으로는 구름 가득한 하늘도, 쏟아져내리는 햇볕도 참 예뻤다. 집 앞 빵집의 빵 냄새와 근처 초등학교 아이들의 왁자지껄한 소리도 좋았다. 느지막히 나가서는 계란과 햄과 치즈가 듬뿍 들은 크레페도 먹고 진한 에스프레소와 초코 가득가득한 뺑오쇼콜라도 먹었다.

둘 다 눈만 겨우 뜬 채로 일요일 오전마다 서는 장에 가서 이것저것 구경하고 사람들은 우리를 구경했다...









오르세에서는 고흐의 아를의 별이 빛나는 밤이 너무나 좋아서 사람들 몇명이 오고가는 동안에도 그 앞을 한참을 떠나질 못했다. 자화상의 배경색이나 붓터치가 좋아서 뚫어져라 쳐다보기도 했고 몇몇 화가들의 그림이 좋아져 탭탭이에 차곡차곡 기록해두기도 했다. 오랑주리에서는 벽을 둘러싼 모네의 수련에 감탄하며 방을 가득 채운 그 묘한 기운에 사로잡혀 멍하니 서있었다.



지도를 잃어버리고 홀로 파리 시내를 헤매다 커다란 스크린에서 테니스 경기 중계하길래 쪼르르 달려갔다. 비가 조금씩 오기 시작했지만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구경하는 그 분위기가 좋아서 결국 비가 쏟아지고 중단될 때까지 봤다. 사람들이 전부 나달을 응원하니 나는 조코비치가 응원하고 싶어졌다. 나달은 뭔가 그 눈빛이 싫어... 옆에 있는 언니도 조코비치를 응원하고 있었는데 사람들이 나달의 경기에 일희일비할 때 우리는 조코비치의 경기에 조용히 탄식하거나 발을 동동거리며 기뻐하곤 했다. 하핫 그러나 나중에 결국은 나달이 우승했다고....









독일로 돌아오는 떼제베 안에서는 에피톤 신보를 들으며 창밖을 구경했다. 바람에 휘어진듯한 긴 나무와 성냥갑 같은 집들, 푸른 언덕과 들판들. 모두 프랑스 화가들의 그림 같았다. 몇백년 전의 화가들이 그린 그림에서도 지금의 모습을 찾을 수 있다는 게 좋았다. 그림 같은 풍경, 풍경 같은 그림. 좋은 것을 보니 좋은 사람들이 생각 났다. 눈치도 많이 보고 낯가림도 심한 내가 아무 거리낌없이 칭얼대고 어리광 부릴 수 있는 사람들에게 문자로 보고 싶다고 고백했다 헤헤


2년 전, 잔뜩 겁먹고 있던 내게 불친절하고 무서웠던 파리는 지금의 내게 또 다른 얼굴로 다가왔다. 여전히 친절하다는 느낌은 아니지만 마음의 여유가 생기니 다른 것들이 많이 보였다. 사람들이 낭만을 운운하기에 충분한 곳이었다. 곳곳에 녹아있는 파리만의 정취가 참 좋았다.



2012년 6월의 일기였다. 허락 받지도 못했고 돈도 모으지 못했지만 내년에 다시 유럽에 갈 생각을 하니 가슴이 두근거린다 콩닥콩닥


덧글

  • Fabric 2013/07/31 08:25 # 답글

    이 문장이 떠오르네요. "프랑스에서는 뺨에 닿지 못한 입술을 공기가 대신 즐긴다. 이렇게 길 잃은 뽀뽀들로 프랑스의 공기는 묵직해져 프랑스를 사랑의 나라라고들 말하는가 보다."

    앗 그러고보니 뭐하고싶다던 사건이... @^@
  • 2013/08/20 11:17 #

    이 문장은 어디에 있던 문장인가요? @^@
  • 2013/07/31 17:47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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