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딛는 걸음 걸음 먼 북소리

눈을 뜨니 아침이었다. 정말 말 그대로 눈을 감았다 뜨니 아침이었다. 
혹시나 사람들을 놓치진 않았을까, 사실 놓치면 놓치는대로 또 혼자서 걷는 재미도 있었을텐데 
그때 이 사람들과 함께 시작하지 못했더라면 내 까미노는 어떠했을지 궁금하기도 하다 

눈 뜨자마자 쪼르르 아침 식사하는 곳으로 갔더니 이미 많은 사람들이 빵에다 잼을 바르고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이리저리 눈치 보며 먹는 둥 마는 둥 사람들과 아침 인사를 나누고 오전 8시, 산티아고를 향한 첫 걸음이 레온에서 시작되었다. 시작된 모험에 마냥 들떠 내딛는 걸음, 걸음, 나는 즐거웠다. 

마주치는 사람들마다 웃으며 부엔 까미노, 인사하고 자전거를 타는 이들은 호흡이 가빠 헥헥 대면서도 부엔 까미노, 꼬박꼬박 인사해줬다. 처음에는 어색해하며 머뭇머뭇 기어가는 목소리로 부엔 까미노, 했지만 나중에는 신나서  부엔 까미노 부엔 까미노 노래를 불렀다. 2시간 정도 걷다 잠시 바에서 휴식하며 그 근처에서 태권도를 가르치신다는 한국분을 뵈었다. 이런 곳에서 한국인으로 산다는 것은 어떨까, 이런 저런 이야기를 듣다 덕분에 까페 꼰 레체도 얻어 먹고, 지나가다 우릴 보고 인사하는 새로운 한국 사람들도 많이 만났다. 첫날 걸었던 거리는 약 22km, 그러나 레온이 꽤 큰 도시여서 그곳을 빠져나오는데만 1시간이 걸렸던 걸 생각하면 25km정도는 걸었을 것 같다. 

운동이라고는 숨 쉬는 것 외에는 하지도 않던 내가 나중에는 4시간 만에 26km도 걸었던 걸 생각하면 체력은 날로 늘었다. 25km남짓 걸었지만 7월의 스페인은 역시 더웠다. 화상이 염려되어 긴 팔 셔츠에 레깅스를 신었기에 땀범벅이 된 옷가지들을 샤워하며 빨고 간식거리와 맥주로 여유로운 오후를 맞이했다. 다들 야외에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수영을 하는 이들도 있었다. 이곳에서 독일인 친구를 처음 만났었는데 이제는 이름도 기억이 안나..... 마지막 산티아고에서도 만날만큼 일정도 비슷했고 대화도 많이 했는데 뒤늦게 추억들을 정리하려니 많이 희미해졌다. 
 
첫날은 루트가 비슷했던 한국인들끼리 모여 근처 조그만 슈퍼마켓에서 장을 보고, 다같이 샐러드와 볶음밥을 해먹었다. 다들 생장부터 걸으셔서 조언도 많이 구하고, 앞으로 걸으면서 계속해서 만나게 될 사람들에 대해 이런 저런 이야기를 듣기도 했다. 저녁 늦게까지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며 스페인 할아버지한테 이쁘다 칭찬도 듣고 헤헤 그렇게 첫날의 저녁이 지나갔다.

설레고 조금은 어색하고 두근대는, 처음이라는 순간이 감사했다. '처음'이라는 일이 많지 않았던 일상과 달리 여행에서는 매 순간이 처음이었고 나는 여전히 무언가에 가슴 설레고 호기심 가득히 세상을 바라볼 수 있다는 것에 감사했다. 그렇게 감사한 마음으로 가득한 까미노에서의 첫 날이 지나갔다.
 



덧글

  • 라운드 2013/04/16 15:51 # 삭제 답글

    레온 사시는 조사범 님을 만나셨군요...

    호리한 체격에 단발 머리를 휘날시는..ㅋㅋ

    우리 이모부 시네요
  • 2013/04/30 16:03 #

    우와 이모부세요? 아 신기하여라 :) 이런 인연에 또 한 번 감탄하게 되네요
  • 라운드 2013/05/25 18:02 # 삭제 답글

    저도 한번 가보고 싶네요... 카미노... ^^* 카페 콘레체 콘 이엘로도 얻어 마시고...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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